장국영·왕조현 《천녀유혼》(1987) — 이루지 못한 사랑 칼럼 썸네일

당신은 나의 뮤즈가 되었습니다.
찬란한 가을 정오의 햇살에서도,
서늘한 저녁 가을 달빛을 머금은 바람 사이에도
그대 있어 이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낙엽 지는 길모퉁이마다
그대의 웃음이 은빛으로 흩어지고
오래된 책장 넘기는 소리 같은
고요한 그리움이 나를 감쌉니다.

멀리 산등성이 붉게 물들 때
내 안의 계절도 그대를 향해 흐릅니다.
사랑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빛으로
매일의 틈새를 조용히 데웁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리 없이 고백합니다.
당신은 나의 뮤즈가 되었습니다.

이름 붙일 수 없어 오래 그리웠던 것들을, 이제 이름 불러 봅니다.


해가 뜨면 끝나는 사랑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한다.

일흔 번째 생일을 맞았을 장국영(1956.9.12 ~ 2003.4.1)을 기리며


1. 시작하는 말 - 왜 우리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끌리는가?

1987년 여름 홍콩, 서극이 제작하고 정소동이 감독한 《천녀유혼(倩女幽魂)》이 개봉했다. 떠돌이 수금원 영채신(장국영)과 여자 귀신 섭소천(왕조현)의 이야기다. 귀신 영화이자 무협 영화이고, 무엇보다 한 편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 영화가 40년 가까이 아시아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이 끝내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결된 사랑은 서랍에 들어가지만, 완결되지 못한 사랑은 책상 위에 펼쳐진 채로 남는다.

1927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은 웨이터들이 계산이 끝나지 않은 주문은 또렷이 기억하면서 계산을 마친 주문은 금세 잊는다는 데 착안했다. 그녀의 실험에서 사람들은 도중에 끊긴 과제를 끝낸 과제보다 더 잘 기억했다. 이후의 재현 실험은 결과가 엇갈려서 법칙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랑에서만큼은 우리 모두 이 효과를 경험으로 안다. 이루어진 사랑에는 결말이 하나뿐이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만약 그날 해가 조금만 늦게 떴다면"으로 시작하는 결말이 끝없이 남는다. 《천녀유혼》은 관객 모두에게 그 '만약'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이 칼럼은 《천녀유혼》을 원전 설화, 진화심리학, 사회사적 은유, 세기말 홍콩, 경제학의 짧은 주석, 그리고 영화의 질감 순서로 들여다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2003년 4월 1일,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난 장국영이라는 한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2. 원전 설화 — 『요재지이』의 「섭소천」

영화의 뿌리는 청나라 문인 포송령(蒲松齡)의 괴이담 모음집 『요재지이(聊齋志異)』에 실린 단편 「섭소천(聶小倩)」이다. 그런데 원전을 읽어 보면 우리가 아는 그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원전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 절강 사람 영채신은 가난하지만 강직한 선비로, 이미 아내가 있다. 금화(金華)를 지나다 인적 끊긴 절 난약사(蘭若寺)에 묵는다. 그곳에는 연적하(燕赤霞)라는 기이한 검객도 머물고 있다.
  • 섭소천은 열여덟에 요절해 절 곁에 묻힌 처녀의 혼령이다. 요물에게 붙잡혀 밤마다 남자를 홀리는 일을 강요당한다. 미색으로 안 되면 금덩이를 내미는데, 그 금은 사실 사람을 해치는 요물의 뼈다.
  • 영채신은 미색도 금도 모두 물리친다. 소천은 그의 강직함에 감복해 스스로 실상을 털어놓고, 연적하 곁에서 자면 살 수 있다고 알려 준다. 그날 밤 연적하의 상자에서 비검이 날아올라 요물을 쫓아낸다.
  • 소천은 자신의 유골을 수습해 좋은 땅에 묻어 달라고 부탁하고, 영채신은 그 약속을 지킨다. 소천은 그를 따라와 연로한 시어머니와 병약한 본처를 정성껏 섬긴다. 본처가 세상을 떠난 뒤 시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영채신의 아내가 된다.
  • 훗날 요물이 복수하러 찾아오지만, 연적하가 남긴 가죽 검 주머니가 요물을 삼켜 버린다. 영채신은 진사에 급제하고, 소천은 아들을 낳으며, 자손들은 벼슬길에서 이름을 얻는다.

원전은 해피엔딩이다. 귀신과 인간의 경계를 넘어 결혼하고, 가문은 번창한다. 『요재지이』 특유의 권선징악과 입신양명의 서사다.

영화는 뼈대를 그대로 두고, 결말과 정조(情調)를 뒤집었다. 난약사, 연적하, 유골의 매장이라는 골격은 원전에서 왔다. 달라진 것은 사람과 끝이다. 영채신은 아내 없는 순진한 청년이 되고, 소천을 옭아맨 존재는 천년 묵은 나무 요괴 '노노(姥姥)'가 된다. 소천은 흑산노요에게 강제로 시집갈 운명이고, 영채신과 연적하는 그녀를 되찾으려 저승까지 쫓아간다. 그러나 결국 새벽이 온다. 햇빛 아래서 귀신은 머무를 수 없고, 소천은 환생의 길로 떠난다. 영채신에게 남은 것은 그녀의 유골함과, 그것을 묻어 주는 일뿐이다.

원전이 「결혼하여 잘 살았다」로 끝난다면, 영화는 「사랑했으나 보내 주었다」로 끝난다.

이 비틀기는 단순한 각색이 아니다. 원전의 해피엔딩은 모든 존재가 제자리를 찾는 질서의 세계를 전제한다. 선비는 급제하고, 귀신은 며느리가 되고, 가문은 이어진다. 1987년의 홍콩은 그런 세계를 믿을 수 없었다. 10년 뒤면 주인이 바뀌는 도시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은 거짓말처럼 들렸을 것이다. 관객이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영원이 아니라 오늘 밤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사랑의 크기를 지속 시간이 아니라 밀도로 쟀다. 원전의 영채신이 도덕 때문에 움직이고 도덕의 보상을 받았다면, 영화의 영채신은 사랑 때문에 움직이고 아무 보상도 약속받지 못한다. 시대를 넘어 살아남은 것은 교훈이 아니라 그 비극 쪽이었다.

3. 왜 섭소천은 영채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나? - 진화론과 심리학

3-1. 흔들다리 위의 설렘

1974년 심리학자 더튼과 아론은 캐나다 카필라노 협곡의 흔들리는 현수교에서 실험을 했다. 흔들다리를 막 건넌 남성들은 튼튼한 다리를 건넌 남성들보다 그곳에서 만난 여성 조사원에게 더 많이 연락했다. 공포로 뛰는 심장을 사람들은 '이 사람 때문에 설렌다'로 착각한다. 이른바 각성의 오귀인(misattribution of arousal)이다.

난약사는 거대한 흔들다리였다. 폐허가 된 절, 바람에 흩날리는 흰 비단, 어둠 속의 거문고 소리. 영채신의 심장은 공포로 뛰었고, 그 박동은 그 자리에 있던 단 한 사람을 향한 설렘으로 번역되었다. 이 착각은 쌍방향이다. 노노에게 들킬까 떨던 소천의 심장 역시 같은 방식으로 영채신을 새기고 있었다.

3-2. 낯선 자에 대한 설렘 - 패턴을 깨는 사람

인간의 뇌는 새로움에 보상한다. 도파민 체계는 이미 아는 것보다 예측을 벗어나는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새로운 자원과 새로운 짝을 탐색하도록 빚어진 진화의 흔적이다.

그런데 소천에게 '낯섦'은 처음 본 얼굴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녀가 만난 남자들은 모두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미색에 넘어가고, 황금에 눈이 멀고, 그리고 죽었다. 영채신은 그 패턴을 깬 첫 번째 사람이다. 소천의 세계에서 그는 예측 오류(prediction error) 그 자체였다. 첫눈의 설렘은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공포로 바뀌기 마련인데, 영채신은 그녀가 귀신임을 알고도 도망치지 않았다. 두 사람을 붙든 것은 낯섦이 아니라 그다음에 오는 무엇이었다.

3-3. 값비싼 신호 - 거절은 가장 강력한 고백이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37개 문화권 1만여 명을 조사해, 남녀 모두 배우자의 조건으로 '친절함'과 '지적 능력'을 최상위에 둔다는 사실을 밝혔다. 문제는 친절함이 흉내 내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화는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ing), 가짜로는 치르기 어려운 대가를 치러야만 보낼 수 있는 신호를 믿도록 우리를 빚었다.

한밤중 인적 없는 절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황금을 동시에 거절하는 가난한 선비. 보는 이가 없으니 체면 때문일 리도 없다. 가진 것 없는 영채신의 단 하나, 흔들리지 않는 성품이 가장 비싼 방식으로 증명된 순간이다. 소천이 그를 사랑한 것은 그가 잘생겨서가 아니라, 그가 자신을 도구로 쓰지 않은 최초의 남자였기 때문이다.

3-4. 피난처, 기지, 그리고 인정

애착 이론은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두 가지를 찾는다고 말한다. 위협 앞에서 달려가 숨는 안전한 피난처(safe haven), 그리고 그곳을 딛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안전 기지(secure base). 노노의 지배 아래 소천에게는 둘 다 없었다. 영채신은 위험 속에서 그녀를 숨겨 주는 피난처였고, 유골을 묻어 주겠다는 약속으로 다음 생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기지였다. 그 약속은 곧 "너에게도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선언이다.

그 밑바닥에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욕구가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영채신은 그녀를 귀신이 아닌 사람으로, 미끼가 아닌 한 명의 여인으로 대했다. 사람은 자신을 사람으로 봐 주는 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3-5. 방해가 사랑을 키우는가?

장애물이 클수록 사랑이 뜨거워진다는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는 1972년 드리스콜 등의 연구에서 나왔다. 그러나 2014년 더 큰 규모의 재현 연구는 반대 결과를 얻었다. 주변의 반대는 대체로 관계의 질을 떨어뜨렸다.

과학은 장애물이 사랑을 키운다고 확언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늘 그 효과를 믿어 왔다. 어쩌면 장애물은 사랑을 키우는 게 아니라 사랑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와야, 우리는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 사랑에서 가장 무거운 장애물은 인간과 귀신의 경계가 아니라, 소천을 옭아맨 사회적 구조였다.

4. 귀신은 누구인가? - 몰락한 귀족의 딸, 유곽의 여인

먼저 분명히 해 둔다. 영화 어디에도 섭소천이 유곽 출신이라는 설정은 없다. 이것은 해석적 독법이다. 다만 그 독법을 뒷받침하는 장면들은 영화 안에 충분하다.

나이 든 주인(노노)이 여귀들을 거느리고, 그들이 남자를 홀려 얻은 정기를 거둬 간다. 소천은 밤마다 곱게 단장하고 거문고 소리로 나그네를 불러들인다. 반항하면 매질을 당한다. 주인은 그녀의 몸, 곧 유골을 볼모로 쥐고 있어서 달아날 수도 없다. 기방의 여인을 묶어 두던 매신계(賣身契)와 같은 구조다. 그리고 마침내 원치 않는 권력자(흑산노요)에게 주인끼리의 거래로 '시집'가야 한다.

이것은 유곽의 구조다. 노노는 포주이고, 난약사는 기방이며, 소천은 몸값을 치를 수 없는 기녀다. 중국에서 기방의 여주인을 '보모(鴇母)'라 불렀다는 사실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돌보는 보모(保姆)와 소리는 같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노노(姥姥) 역시 '할멈'이라는 뜻이니, 두 이름은 묘하게 겹친다.

이 은유가 상상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중국사에서 몰락한 귀족의 딸이 유곽의 여인이 되는 일이 실제로 되풀이된 악습이었기 때문이다. 명나라 영락제가 조카 건문제의 왕위를 빼앗은 뒤, 건문제에게 충절을 지킨 신하들의 처와 딸들은 관기를 관리하는 교방사(教坊司)로 보내졌다. 어제의 규수가 하룻밤 사이에 연회에서 술을 따르는 신세가 되었다. 죄인의 가족을 적몰(籍沒)해 노비나 관기로 삼는 관행은 여러 왕조에 걸쳐 이어졌다. 가난한 서생과 기녀의 사랑이 당나라 전기 「이와전(李娃傳)」부터 명나라 소설 「두십낭노침백보상(杜十娘怒沉百寶箱)」까지 중국 서사의 오래된 장르였던 것도 이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난약사를 떠도는 여자 귀신들은, 가문이 무너진 뒤 이름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딸들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옛날 기녀를 기적(妓籍)에서 빼내 주는 일을 '속신(贖身)'이라 했다. 소천의 유골을 좋은 땅에 묻어 주겠다는 영채신의 약속은 속신이다. 그녀를 유곽에서 꺼내 '가족'과 '이름'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일. 매장은 곧 복권(復權)이다.

이 독법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예가 하나 있다. 이듬해 개봉한 관금붕 감독의 《연지구(胭脂扣)》(1988)에서도 장국영은 여자 귀신과 사랑에 빠진다. 다만 이 영화의 귀신 여화(매염방)는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1930년대 홍콩 석당저 유곽의 기녀였다. 《천녀유혼》이 은유로 감춰 둔 것을 《연지구》는 드러내 놓고 말한다. 두 영화는 같은 계보에 있다. 반환을 앞둔 홍콩이,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여인의 혼을 연달아 스크린에 불러낸 것이다.

5. 세기말 홍콩 - 동이 트면 떠나야 하는 도시

5-1. 시한부 선고를 받은 도시

1982년 9월,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가 베이징에서 덩샤오핑을 만났다. 회담을 마치고 인민대회당 계단을 내려오던 대처가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장면이 전파를 탔고, 홍콩 사람들은 그것을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였다. 이듬해 홍콩 달러가 폭락하자 정부는 1983년 10월 미국 달러 페그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1984년 12월 중영공동성명이 서명되었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의 주권은 중국으로 넘어간다. '일국양제'와 '50년 불변'이라는 약속이 붙어 있었지만, 그것을 온전히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때부터 홍콩은 시한부의 도시였다. 《천녀유혼》이 개봉한 1987년은 그 시계가 10년을 남기고 째깍거리던 해였다. 같은 해 10월 '검은 월요일'이 덮치자 홍콩 증권거래소는 나흘간 문을 닫았고, 다시 문을 연 날 항셍지수는 하루 만에 3분의 1이 사라졌다. 1989년 6월 천안문의 유혈 진압은 불안을 공포로 바꾸었다. 1990년대 초반, 해마다 수만 명이 캐나다와 호주로 떠났다.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났고, 떠날 수 없는 사람은 남아서 그날을 기다렸다.

장국영도 그 행렬 속에 있었다. 1989년 가수 은퇴를 선언한 그는 이듬해 캐나다 밴쿠버로 떠났다. 수많은 홍콩 사람이 그랬듯 동이 트기 전에 도시를 떠나는 쪽을 택했고, 수많은 홍콩 사람이 그랬듯 결국 다시 돌아왔다.

5-2. 사라짐의 문화

홍콩 출신 문화이론가 아크바 아바스(Ackbar Abbas)는 『홍콩: 사라짐의 문화와 정치』(1997)에서 반환을 앞둔 홍콩을 '사라짐'이라는 키워드로 읽었다. 그는 홍콩을, 사람들이 제대로 들여다보기도 전에 이미 사라지고 있는 도시로 보았다. 그리고 그 사라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영화로 앞서 말한 《연지구》를 분석했다. 문화비평가 레이 초우(Rey Chow)도 논문 「사랑의 기념품(A Souvenir of Love)」(1993)에서 《연지구》를 과거에 대한 홍콩의 향수와 불안의 텍스트로 읽었다.

《천녀유혼》은 이 논의의 한가운데에 있지는 않다. 감독이나 제작자가 반환의 알레고리라고 말한 적도 없다. 그러나 같은 무렵, 같은 배우가, 같은 '유곽의 여자 귀신'과 사랑에 빠지는 두 영화를 나란히 놓으면 이 독법은 자연스러워진다. 서극이 3년 뒤 만든 속편 《천녀유혼2: 인간도》(1990)는 부패한 관리와 혼란한 정국을 훨씬 노골적으로 그려서, 이 시리즈를 시대의 불안과 함께 읽는 평자들의 근거가 되었다.

귀신이야말로 사라짐의 존재다. 여기 있지만 여기 속하지 않고, 해가 뜨면 사라진다. 이 독법을 따라가면 인물들은 새 얼굴을 얻는다. 섭소천은 이름 없이 떠돌며 주인끼리의 합의에 따라 다른 곳으로 보내질 운명인 홍콩이다. 새벽은 1997년, 구원일지 소멸일지 아무도 모르는 기한이다. 영채신은 사랑하지만 붙잡을 힘이 없어, 그녀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빌며 떠나보내는 개인들이다. 그리고 환생은 반환 이후의 새로운 정체성이다. 소천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이름,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다만 그 존재가 영채신이 사랑한 그녀와 같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5-3. 은유의 양면성

이 은유는 한 방향으로만 읽히지 않기에 힘이 있다. 유골을 '고향 땅'에 묻는 장면에 주목하면, 반환은 흩어진 딸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귀향이다. 소천이 원치 않는 권력자에게 '시집'가는 장면에 주목하면, 반환은 본인의 뜻을 묻지 않은 거래다. 1987년의 홍콩 사람들 안에는 이 두 감정, 귀향에 대한 기대와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있었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말할 수 없기에, 이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아련함'일 수밖에 없었다.

6. 왜 간절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가? - 경제학의 짧은 주석

경제학은 사랑을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사랑이 부딪히는 벽의 모양은 꽤 정확히 그려 낸다. 세 가지만 짚는다.

멈춘 쪽은 소천이었다. 확률론의 '비서 문제'는 한 번 보낸 후보를 다시 부를 수 없을 때, 처음 약 37%는 흘려보내며 기준을 세우고 그 뒤 지금까지의 누구보다 나은 사람이 나타나면 멈추라고 권한다. 영채신은 이 모형에 맞지 않는다. 그는 짝을 찾던 사람이 아니라 우연히 귀신을 만난 사람이다. 그러나 소천은 다르다. 그녀는 오랜 세월 난약사를 찾아온 수많은 남자를 한 명씩 보아 왔고, 기준은 충분히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수학이 권하는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멈췄다. 그런데도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서 문제에는 '고르면 가질 수 있다'는 전제가 숨어 있는데, 소천에게는 그 전제가 없었다. 옳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과 그 사람과 함께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함께'라는 칸이 없는 게임. 소천은 자신이 귀신이라는 가장 불리한 사실을 먼저 밝혔고, 영채신은 유골을 묻어 주겠다는 약속으로 응답했다.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는 『이성 안의 열정』(1988)에서 감정이야말로 계산보다 믿을 만한 약속의 장치라고 보았다. 계산으로 한 약속은 계산이 바뀌면 깨지지만, 사랑으로 한 약속은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진다. 문제는 그렇게 쌓은 신뢰가 도달할 곳이 없다는 데 있다. 그녀를 구하는 길은 환생뿐이고, 환생은 이별이다. 그녀를 곁에 두는 길은 노노의 지배 아래 두는 것뿐이다. 두 사람이 무엇을 택하든 '둘이 함께 남는다'는 결과는 선택지에 없다. 간절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누군가 잘못 골라서가 아니라, 판의 규칙이 그 결말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흥정할 수 없는 사랑.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의 『괴짜경제학』(2005)에는 인센티브가 관계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사례가 나온다. 이스라엘 하이파의 어린이집이 늦게 오는 부모에게 벌금을 물리자 지각은 오히려 늘었다. "선생님께 미안하다"는 도덕의 문제가 돈으로 살 수 있는 서비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관계는 거래가 된다. 소천이 살아온 세계가 바로 그 벌금 이후의 세계, 미색과 황금으로 모든 관계에 값이 매겨진 곳이었다. 영채신은 그 가격표를 거부했다. 아무것도 사지 않았고 아무것도 팔지 않았기에, 두 사람 사이는 거래가 아닌 사랑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거래가 아니었기에, 그 사랑은 어떤 흥정으로도 구제될 수 없었다. 영채신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구원이 곧 환생이고 환생이 곧 이별이라는 것을. 그의 이별은 뜻밖의 결과가 아니라, 알고 치른 대가였다.

경제학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옳은 선택이 반드시 아프지 않은 선택은 아니라는 것, 그것은 경제학의 언어 바깥에 있다.

7. 영화의 질감 - 흰 비단, 물속의 입맞춤, 그리고 목소리

그 바깥의 것을 말하는 것은 결국 영화 자신이다. 원전도, 심리학도, 정치사도, 경제학도 아닌 이 영화의 이미지와 소리가 관객의 가슴에 닿았다. 무엇보다 영화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감독 정소동은 본디 무술감독 출신이다. 그는 와이어 액션으로 귀신을 날게 했다. 섭소천은 걷지 않고 떠다닌다. 흰 비단 소매가 바람을 타고 뻗어 나가고, 연기 낀 푸른 빛 속에서 긴 머리가 물결친다. 이 영화의 귀신은 무섭기보다 가벼웠고, 그 가벼움이 곧 덧없음이었다. 사람보다 가벼운 존재, 붙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존재.

가장 오래 기억되는 장면은 욕조다. 노노가 들이닥치자 소천은 영채신을 물속에 숨기고, 숨이 막혀 가는 그에게 입을 맞춰 숨을 불어넣는다. 첫 입맞춤이 욕망이 아니라 숨을 나눠 주는 일이었다는 것, 이 장면 하나가 두 사람의 관계를 요약한다. 살리려는 입맞춤이고, 지키려는 사랑이다.

그리고 목소리가 있다. 음악은 황점(黃霑)과 로미오 디아스가 맡았다. 주제가 〈천녀유혼(倩女幽魂)〉은 장국영이 직접 불렀다. 영채신이 스크린 안에서 사랑하는 동안, 장국영은 스크린 밖에서 그 사랑을 노래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장면 위로는 섭천문(葉蒨文)의 삽입곡이 흐른다. 제목은 〈여명불요래(黎明不要來)〉, "새벽이여, 오지 마라." 이 영화에서 새벽은 시간이 아니라 적이다.

8. 맺으며, 장국영의 이루지 못한 사랑

8-1. 스크린 속의 영채신들

장국영은 《천녀유혼》 이후로도 이루지 못한 사랑을 연기했다. 《연지구》에서는 생사를 함께하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홀로 남은 남자였다. 《아비정전》(1990)에서는 발 없는 새처럼 평생 날아다니며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는 아비였다. 《패왕별희》(1993)의 경극 배우 데이(程蝶衣)는 무대 위의 우희가 되어 평생 한 사람을 사랑했다. 그는 그 사람과 한 해, 한 달, 하루, 한 시진이라도 모자라면 평생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역사의 격랑 속에서 부서졌다. 반환의 해에 찍은 《해피 투게더》(1997)에서는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떠나고 돌아오기를 되풀이하며, 헤어질 때마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보영이었다.

스크린 속 장국영은 언제나 사랑하는 쪽이었고, 언제나 새벽을 맞는 쪽이었다. 관객은 그것이 연기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는 그 인물들에게 자기 안의 무언가를 조금씩 빌려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8-2. 스크린 밖의 사랑

스크린 밖의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젊은 시절 가까운 동료 배우 모순균에게 청혼한 적이 있다고 훗날 털어놓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그의 곁을 지킨 사람, 당학덕(唐鶴德)이 있었다.

1997년, 반환의 해에 열린 콘서트에서 장국영은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부르며 이 노래를 어머니와 '당 선생'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그 시절 홍콩에서 아시아 최고의 스타가 무대 위에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새벽빛 아래로 한 걸음 걸어 나오는 일이었다.

돌아온 것은 박수만이 아니었다. 2000년 콘서트에서 그가 긴 머리와 하이힐, 성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의상으로 무대에 서자 일부 언론은 그것을 조롱거리로 삼았다. 그는 그 무대를 예술이라 불렀지만, 세상은 가십으로 소비했다. 그의 사랑에는 끝내 법이 불러 주는 이름도 없었다.

그러니 장국영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는 사랑했고, 오래 사랑받았다. 그것은 세상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허락하지 않았던 사랑이었다. 섭소천이 밤에만 사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도 오랫동안 절반쯤은 그늘 속에서 사랑해야 했다. 영채신에게 새벽이 적이었다면, 장국영에게는 세상의 시선이 새벽이었다.

8-3. 만우절의 부고

2003년 4월 1일, 그는 마흔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우울증과 싸워 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람들은 한동안 그 소식을 믿지 못했다. 그날이 만우절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짓궂은 농담이기를, 모두가 바랐다.

우리는 그의 떠남을 영화처럼 아름다운 비극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우울증은 운명이 아니라 병이었고, 그는 그 병과 오래 싸운 사람이었다. 그의 떠남은 어떤 사랑의 완성도, 어떤 서사의 결말도 아니었다. 너무 이르게 찾아온 상실이었을 뿐이다. 그를 제대로 추모하는 길은 그의 죽음을 신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서 남긴 노래와 연기와 용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8-4. 너무 늦게 밝아 온 새벽

그가 떠난 뒤 세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조롱받던 그의 무대 의상은 이제 시대를 앞서간 예술로 이야기되고, 그가 조심스럽게 꺼냈던 고백은 용기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해마다 4월 1일이면 홍콩의 그 거리에는 꽃이 쌓이고, 당학덕은 지금도 그를 기린다. 올해 9월 12일, 그가 살아 있었다면 일흔 번째 생일이었다.

장국영의 사랑은 영채신의 사랑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영채신은 햇빛 때문에 소천을 잃었다. 장국영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사랑이 빛 아래로 온전히 걸어 나오기까지, 세상이 너무 늦게 밝아 왔을 뿐이다. 그가 끝내 보지 못한 새벽은 두려운 새벽이 아니라, 그가 오래 기다린 새벽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아침.

《천녀유혼》의 마지막, 영채신은 동이 트는 하늘 아래 소천의 유골을 묻는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이름 있는 자리로 돌려보내는 마지막 약속의 이행이다. 우리가 이 영화를, 그리고 장국영을 잊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떠난 이에게 이름과 자리를 돌려주는 일이니까.

우리는 모두 조금씩 영채신이고, 조금씩 섭소천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한다. 해가 뜬 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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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포송령, 『요재지이』 「섭소천」
  • 《천녀유혼》(1987, 정소동 감독·서극 제작, 음악 황점·Romeo Díaz), 《천녀유혼2: 인간도》(1990), 《연지구》(관금붕, 1988)
  • Zeigarnik, B. (1927). 미완 과제의 기억에 관한 연구
  • Dutton, D. & Aron, A. (1974). 흔들다리 실험,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 Buss, D. (1989). 37개 문화권 배우자 선호 연구,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 Driscoll, R. et al. (1972) / Sinclair, H. C. et al. (2014).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와 재현 연구
  • Chow, R. (1993). "A Souvenir of Love," Modern Chinese Literature
  • Abbas, A. (1997). Hong Kong: Culture and the Politics of Disappearance
  • Frank, R. (1988). Passions Within Reason
  • Levitt, S. & Dubner, S. (2005). 『괴짜경제학』 / Gneezy, U. & Rustichini, A. (2000). 하이파 어린이집 벌금 연구

부록: 투자자를 위한 천녀유혼 -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

본편과 결이 다른 글이라 따로 적는다. 투자 칼럼 독자를 위한 짧은 덧붙임이다.

투자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난약사에 묵어 본 적이 있다. 처음엔 아름다웠지만 어느새 계좌에 붙어 떠나지 않는 귀신이 된 종목. 밤마다 호가창을 보며 "새벽이 오기 전에 돌아올 거야"라고 되뇌게 하는 종목 말이다. 행동경제학은 우리가 왜 그것을 떠나보내지 못하는지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매몰 비용의 오류다. 아크스와 블루머(1985)는 사람들이 이미 쓴 돈이 아까워 미래의 선택을 왜곡한다는 것을 보였다. "이만큼 물렸는데 여기서 팔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은 당신의 매수 단가를 모른다. 둘째는 손실 회피다. 카너먼과 트버스키(1979)의 전망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같은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을 대략 두 배 더 아프게 느낀다. 팔지 않는 한 손실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이기에, 우리는 그 고통을 미루려 버틴다. 셋째는 처분 효과다. 셰프린과 스태트먼(1985)이 이름 붙이고 오딘(1998)이 1만 개 개인 계좌에서 확인한 현상으로, 개인 투자자는 오른 종목은 너무 빨리 팔고 떨어진 종목은 너무 오래 붙든다. 좋은 사랑은 쉽게 놓고, 나쁜 사랑에는 오래 매달린다.

영채신이 한 일은 그래서 어렵다. 그는 저승까지 쫓아갔다. 목숨과 마음이라는 가장 비싼 매몰 비용을 치렀다. 그런데도 새벽이 오자 붙잡지 않았다. 과거에 쏟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녀에게 무엇이 최선인지를 보고 결정했다. 그리고 그 곁에는 "해가 뜨면 끝이다"라는 규칙을 냉정하게 일러 주는 연적하가 있었다. 투자에서 연적하는 미리 적어 둔 원칙이다. 매수 전에 정한 손절 기준, 포지션의 한도, 투자 논리가 깨지면 판다는 약속. 사랑에 빠진 뒤에는 누구도 냉정할 수 없으니, 냉정함은 사랑에 빠지기 전에 적어 두어야 한다.

손실을 확정하지 않은 종목은 귀신처럼 계좌를 떠돌며 판단을 흐리고 새로운 기회를 가린다. 손실을 확정하는 순간 그 돈은 비로소 '묻히고', 남은 자본은 다음 생으로 나아간다. 떠나보낸 것이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다. 시장은 때로 버틴 사람에게 보상한다. 그러나 투자에서 지킬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원칙뿐이다.

※ 이 부록은 특정 종목의 매매를 권유하지 않으며, 투자 판단과 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부록 참고: Kahneman & Tversky(1979), Arkes & Blumer(1985), Shefrin & Statman(1985), Odean(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