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무능한 자의 마지막 피난처다." —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
1942년, 스물두 살의 젊은 유대계 이민자 출신 작가가 잡지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에 단편을 하나 발표했다. 은하 제국의 몰락을 막으려는 수학자의 이야기였다. 이 단편은 훗날 인류 지성사의 한 축을 바꿔놓은 『파운데이션(Foundation)』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등장한 가상의 학문 심리역사학(Psychohistory) 은, 80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수학으로 역사를 예측한다는 발상
심리역사학의 핵심은 우아할 정도로 단순하다. 개인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어도, 수조 단위 인구의 거시적 움직임은 통계적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수학, 통계학, 사회학을 결합해 거대한 인간 집단의 행동 패턴을 방정식으로 모델링하는 이 학문으로, 수학자 해리 셀던은 은하 제국의 붕괴가 필연적이며 그 이후 찾아올 3만 년의 암흑기를 1천 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예언한다.
이 발상은 허구에 머물지 않았다. MIT 미디어랩의 알렉스 펜틀랜드(Alex Pentland)가 창시한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 은 빅데이터로 인간 집단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비합리적 선택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냈다. 아시모프의 상상력은 현대 데이터 과학의 중요한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예측은 실패한다, 바로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조차 셀던의 예측은 완벽하지 않았다. 『파운데이션』 후반부, '뮬(The Mule)'이라는 돌연변이 개체의 등장으로 심리역사학의 예측은 궤도를 이탈한다. 개인의 의지와 감정, 공포와 욕망이라는 변수가 거대한 수학적 모델을 무너뜨린 것이다.
현실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예상치 못한 전쟁, 글로벌 금융 위기. 우리는 반복해서 예측의 실패를 목격했다. 인간의 집단적 행동은 여전히 방정식으로 완전히 포획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조차 모든 경우의 수를 샘플링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이 현재까지의 결론이었다.
문제는 '예측'에서 '조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인공지능이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해서, 미래를 '변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LLM과 고도화된 AI 에이전트, MCP(Model Context Protocol)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을 완전히 바꾸어놓고 있다. AI가 모든 변수를 계산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그림이 아니라, AI가 미세한 인지 조정을 통해 사회 전체의 방향을 서서히 재설계하는 시나리오. 이것이 더 현실적이고, 더 위험한 미래다.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지난 수십 년간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극적으로 변화했다. 과거에는 치료와 혐오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인권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미국 성인의 약 10%가 스스로를 비이성애자로 정체화한다는 통계가 있고, 동성 결혼은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이 변화에는 오랜 인권 운동과 할리우드를 비롯한 문화 콘텐츠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이제 상상해보자. LLM 기반의 정교한 언어 에이전트들이 SNS와 온라인 담론 공간에서 수십 년간의 인권 운동을 단 수년으로 압축할 수 있다면? 혹은 정반대 방향으로, 어제까지 평범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를 정당화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여론을 조율할 때
이것은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다. 국가 또는 거대 조직이 정교하게 설계된 AI 에이전트 네트워크를 활용해 특정 집단의 윤리, 상식, 의식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일. 목표 집단이 자신이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적국은 제3국이나 특정 종교 집단을 대상으로 인지 편향을 유발하고, 일상적인 언어와 담론을 서서히 오염시키며 사회 혼란을 조장할 수 있다. 뉴스도, 정책도 아닌, 수많은 '평범한 대화' 속에 스며든 미세한 조정. 누군가의 댓글, 추천 알고리즘의 기묘한 패턴, 특정 시점에 유독 자주 노출되는 관점들.
국가의 새로운 역할
이런 미래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역할 변화를 요구한다. 전통적인 검열이나 선전 통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인지 교란을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분석하는 새로운 형태의 감시 체계. 사이버 공간의 면역 시스템 같은 역할이다.
문제는 이런 감시 권한을 가진 주체가 동시에 '조정자'가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이다. 누가 조정자를 감시할 것인가.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드러나듯, 가장 위험한 것은 예측의 실패가 아니라, 예측하는 자의 의도다.해리 셀던의 꿈은 수학으로 역사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더 복잡하다. AI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할지라도, 미래를 설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설계도를 누가 쥐고 있느냐다.예측의 과학에서 조정의 공학으로. 아시모프가 80년 전 던진 질문은 이제 이렇게 업데이트되어야 할 때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생애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1992)는 러시아 스몰렌스크 근처 페트로비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부모가 운영하는 사탕 가게의 잡지 진열대를 통해 SF를 접한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화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보스턴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생화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열아홉 살에 첫 단편을 팔았고, 스물두 살에 『파운데이션』 연작의 첫 단편을 발표했다. 과학자이자 작가로서 그는 SF뿐 아니라 화학, 물리학, 천문학, 성서, 셰익스피어에 이르는 대중 교양서를 방대하게 집필했으며, 로버트 하인라인,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SF의 '빅 3(Big Three)'로 불렸다. '로보틱스(robotics)'라는 단어 자체가 그의 소설에서 처음 쓰여 사전에 등재된 것으로 유명하다.
아시모프는 1992년, 수년 전 심장 수술 중 수혈로 감염된 HIV로 인한 심부전과 신부전으로 사망했다. 500권 이상의 저서를 남긴 그는 20세기 가장 다작한 지식인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요 저작
『파운데이션』 시리즈(Foundation, 1942–1993) — 은하 제국의 쇠퇴를 예측하고 인류 문명의 지식을 보존하려는 심리역사학의 이야기. 휴고상 '역대 최고의 시리즈(Best All-Time Series)' 부문을 수상했으며, SF 사상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아이, 로봇』(I, Robot, 1950)—로봇공학 3원칙(Three Laws of Robotics) 의 모순과 역설을 다룬 연작 단편집. 인간이 만든 규칙 체계가 어떻게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사고실험으로, 오늘날 AI 얼라인먼트(AI Alignment) 논의의 문학적 원형이다.
『로봇』 시리즈(Robot, 1950–1985) — 『강철 도시』(The Caves of Steel), 『여명의 로봇』(The Robots of Dawn) 등을 통해 인간과 로봇의 공존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연작. 후기에는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된다.
『영원의 끝』(The End of Eternity, 1955) — 시간 여행을 소재로, 역사에 개입해 인류의 '최적 경로'를 관리하는 조직의 윤리적 딜레마를 다룬 걸작. 본문에서 다룬 '조정하는 자의 의도'라는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신들 자신』(The Gods Themselves, 1972) — 평행 우주와의 에너지 교환이 초래하는 파국을 다룬 장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 수상했다.
아시모프를 처음 접한다면, 이 칼럼이 다룬 『파운데이션』 1권에서 시작해, '개입과 조정의 윤리'를 정면으로 다룬 『영원의 끝』으로 나아가는 독서 경로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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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사유하며 문화, 사회 현상을 기록합니다. · By Dennis Kim (김호광) 前 싸이월드 대표 · 해커, 위협 인텔·퀀트 리서처